과자 [菓子]
정식 식사 외에 먹는 단맛을 위주로 하는 기호식품.
과자의 종류는 대단히 다양하며, 제조 기원에 따라 한과(韓菓)와 양과(洋菓)로 구분된다. 우리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 오던 과자류는 과일을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하여 조과(造菓)라고도 하며, 유밀과(油蜜菓)·강정·산자({{산$01}}子, {{산$02}}子)·다식(茶食)·전과(煎菓, 正菓)·엿〔飴〕등 70여 종의 과자가 만들어졌다.
현존하고 있는 우리 나라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과자류의 역사적 상한 시기는 고려시대이지만, 우리 음식을 원류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나라시대(奈良時代) 음식에 과자류가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이미 타래과나 강정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뒤 불교의 성행으로 육식을 금하고 소식을 하며 차를 많이 마시는 데 따라 조과류도 급격하게 발달되어서, 고려시대는 연등회·팔관회의 연회, 공사연회와 제연, 왕의 행차, 혼례 등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고려사≫에도 충렬왕 때 세자의 혼인식에 참석하러 원나라에 가서 베푼 연회에 유밀과를 차렸더니, 그 맛이 입 속에서 슬슬 녹는 듯하여 평판이 대단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이런 연유로 몽고에서는 유밀과를 특히 ‘고려병(高麗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밀과는 곡물·꿀·기름으로 만들어지는 사치스러운 식품으로 귀족들과 사원에서 만듦으로써, 물가가 오르고 민생이 말이 아니게 되어 1192년(명종 22) 유밀과의 사용을 금하고 나무열매를 쓰라는 명령을 내렸고, 1353년(공민왕 2)에도 유밀과 사용금지령을 내리게 되었다.
조선시대도 조과류는 널리 사용되어 혼례·제향·헌수 등 의례음식에 꼭 쓰였다. 그리고 과자류의 금지도 계속되어, ≪대전회통≫에도 헌수·혼인·제향 외에 조과를 사용하는 사람은 곤장을 맞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조과류는 조선시대에 상품화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각 가정에서 직접 만들었고, 이에 필요한 재료를 상비하고 있었다. 또한 조과는 잔칫상차림에 높이 괴어 올리는 것이 관례여서, 조과의 전문기술이나 굄새를 잘하는 사람이 초빙되어 그 일을 담당하였다.
1884년(고종 21) 한러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뒤 손택(孫澤)이 정동구락부를 개설하여 서양 음식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서양 과자가 도입되었다. 서양에서 과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기원 수천 년 전인 메소포타미아시대로, 이것이 그리스·로마·이집트로 전해지면서 1세기경 남부유럽에서 과자의 제조가 크게 성행하였다. 15세기 말 미국 대륙이 발견되어 다량의 설탕과 코코아·커피 등이 유럽에 반입되면서 종류가 다양해졌으며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서울의 상류층에서 주로 연말연시 선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20년 초 우리 나라 최초의 양과자점이 문을 열었으며, 1940년까지는 서울에 140여 개의 양과자점이 생겨났다. 광복 이전까지 우리 나라에는 10여 개의 제과공장이 있었으나 모두 일본인이 경영하던 것이었다.
우리 나라의 제과산업은 1945년 민후식·신덕본·박병규·한달성 등이 설립한 해태제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뒤 동양제과가 설립되어 이 두 업체가 우리 나라 제과산업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1960년대 말까지 드롭프스·웨하스·비스킷·양갱류를 생산하였고, 1967년에는 국산 초콜릿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같은해 롯데제과가 설립되어 껌을 비롯한 다양한 과자가 생산되었으며, 그뒤 수년간 우리 나라의 제과산업은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빙과류(氷菓類)는 1970년 해태제과가 현대식 아이스크림 생산시설을 도입하면서 이전의 아이스케이크 형태를 띤 단순한 동결제품에서 탈피, 아이스크림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대일유업·삼강산업 등 대형 제조업체가 자리잡게 되었다. 생과자류는 1970년 초까지 소규모의 제과점형태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1972년 샤니케익이 설립되고 기존의 유명 제과점들이 연쇄점을 만들어 대형화하기 시작하여 1986년에는 700여 개의 점포가 생겼다.
1976년부터는 껌을 비롯한 과자류의 해외 수출이 시작되어 동남아시아·미주·유럽·중동·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됨으로써 우리 나라의 제과산업이 국제 수준에 이르렀음을 입증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러시아 등이 새로운 수입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① 약과류:밀가루에 꿀·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지진 것으로, 약과·연약과·만두과·다식과 등이 있다. 기름에 지질 때 기름이 약과에 속속들이 배어들도록 130℃ 전후의 온도에서 지져야 하며, 다시 꿀에 재어 꿀이 배어들도록 한다.
약과류의 단면은 여러 켜로 포개진 듯하고, 그 사이에 기름과 꿀이 배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에는 새·붕어·과일 등의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조선시대에는 모나게 썰거나 판에 찍어 국화 문양으로도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높이 괴어 올리는 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② 박계류:밀가루에 소금 간을 하고 꿀을 섞어 되게 반죽해서 높은 온도의 기름에 지진 것으로, 대박계·중박계 등이 있다. 기름을 섞어 반죽한 것이 아니므로 단면에 여러 켜가 생기지 않고, 또 높은 온도에서 지진 것이므로 속에 기름이 배어 있지도 않다. 잔치에서보다 제향음식으로 쓰인다. ③ 다식류:쌀·깨·밤·송화 등의 가루에 꿀을 섞어 판에 찍어낸 것으로, 밤다식·송화다식·흑임자다식·잡과다식·용안육다식·녹말다식 등이 있다.
④ 산자·강정류:산자와 강정은 모두 찹쌀가루에 술과 꿀을 섞어 찐 것을 공기가 섞이고 끈기가 생길 때까지 쳐서 갸름하게 썰어 말렸다가 기름에 튀겨 고물을 묻힌 것이다. 산자에는 밥풀산자·매화산자·연사과·빈사과 등이 있고, 강정에는 깨강정·개피강정·잣강정·송화강정 등이 있다. 산자와 강정은 연하고 속이 비어 있어, 씹으면 바삭하는 소리가 날 만큼 튀겨져야 좋다.
⑤ 정과류:과실이나 연근·생강·도라지 등을 꿀에 졸여 만든 것으로, 모과정과·유자정과·생강정과·천문동정과·연근정과·도라지정과 등이 있다. ⑥ 숙실과:율란·조란·밤초·대추초 등이 있다. ⑦ 과편:과일즙에 녹말을 섞어 굳힌 것으로, 앵두편·녹말편·산자편 등이 있다. ⑧ 엿:조청·강엿·깨엿·생강엿 등이 있다. ⑨ 엿강정:깨엿강정·호두엿강정·땅콩엿강정 등이 있다.
저장성에 따라 생과자·건과자(乾菓子)로 나누기도 하고, 반죽의 형태에 따라 반죽형·거품형·혼합형으로 나누며, 부풀리는 방법에 따라 화학적으로 부풀린 제품, 효모로 부풀린 제품으로 나눈다. 특수한 형태로는 냉동과자가 있다.
① 생과자:저장성이 낮아 가정이나 제과점에서 매일 생산해야 하는 것으로, 케이크·파이·도넛·빵과자 등이 있다. ② 건과자:저장성이 높아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스낵과자·비스킷·초콜릿·사탕·껌 등이 있다. ③ 화학적으로 부풀린 제품:파이·비스킷·쿠키 등이 있다. ④ 효모로 부풀린 제품:크래커·도넛 등이 있다. ④ 반죽형:유지류와 화학팽창제를 쓰는 것으로 파이·쿠키 등이 있다. ⑤ 거품형:유지류를 쓰지 않고 달걀 단백질을 주로 쓰는 것으로 케이크류가 있다. ⑥ 혼합형:거품형과 반죽형의 방법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⑦ 냉동과자:무스·아이스크림·셔벗(sherbet) 등이 있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외래 문화가 급격히 도입되어 양과자는 우리 사회에서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값싼 밀가루와 정부의 분식장려시책으로 비스킷류가 간식의 대종을 이루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 주로 사용해 오던 한과류는 거의 잊어버릴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민경제가 윤택해지고, 설탕·지방 등 고열량 식품의 과다 섭취로 인한 비만증·성인병의 위험이 커짐에 따라, 맛이 담백하고 품위가 있는 조과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다. 즉 제과업계는 그 동안의 기술 축적을 이용하여 한과류를 현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새로운 형태의 한과들이 대량생산되고 있으며, 한과 전문 제과점도 늘어나고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참고문헌≫ 韓國食品史硏究(尹瑞石, 新光出版社, 1974)
≪참고문헌≫ 高麗以前韓國食生活史硏究(李盛雨, 鄕文社, 1978)
≪참고문헌≫ 小麥과 製粉工業(韓國製粉工業協會, 1985)
≪참고문헌≫ 食品業成長史-製菓篇-(鄭普永, 現代食品 14-21)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K&i=300406&v=42